

첫 접시, 반편육의 정갈함
오랜만에 경인면옥을 찾았다. 여전히 변함없는 간판, 여전히 정숙한 홀 분위기. 주문을 마치자 가장 먼저 등장한 건 반편육 한 접시.
얇게 저며낸 고기 위로 김이 은은하게 올라오고, 고기 사이로 맑은 기름이 미끄러지듯 흐른다. 그 자체로 소박한 품위가 있다.
고기 결을 따라 젓가락을 밀어 넣는 순간, 입 안에 퍼지는 부드러움과 담백함. 쌈장이나 겨자가 굳이 필요 없을 만큼, 고유의 육향이 살아 있었다.
소주를 한 병 시키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오늘은 자제. 면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인면옥의 육수는 진화하고 있었다
곧이어 평양냉면이 나왔다. 이 집 냉면은 말이 없다. 그저 담담하게 한 그릇 놓일 뿐이다.
면발 위에 소복이 얹힌 소고기와 배, 반쯤 잠긴 국물. 익숙한 그 구성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첫 숟가락을 뜨자, 간장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도 결코 앞서지 않았다.
예전, 내가 이 집을 다소 냉정하게 평가했던 시절이 있었다. 간장맛이 너무 과했고, 육향이 밀려났던 기억. 그때는 실망이 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육수는 훨씬 정돈되어 있었고, 간장은 감초처럼 자리를 잡은 느낌.
경인면옥만의 육수가 마침내 완성된 듯한 인상이었다.

면, 고집스럽게 탄력 있다
면은 평양냉면답게 메밀 특유의 부드러운 탄력을 갖고 있었다.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고, 국물과 함께 삼킬 때는 목 넘김이 참 좋다.
그 어떤 과장도 없이, ‘한 그릇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개인적으로는 겨자와 식초는 손대지 않았다. 이 육수엔 그 무엇도 첨가할 필요가 없었다.


마무리하며
오늘 경인면옥의 평양냉면은 내가 기억하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니, 더 나아진 쪽으로 달랐다.
자신만의 육수를 찾기 위해 시간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과정이 이 한 그릇에 담긴 듯했다.
평양냉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기억의 재편집이다.
오늘의 한 그릇이, 예전의 아쉬운 기억을 부드럽게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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